2009년 12월 11일
감다. 감아오다.
문자로 써놓으니 평소에 쓰던 어감이랑 사못 다르다. 어쨌든 저 동사는 훔치다와 거의 동일한 의미를 가진 부산 경남 지역의 방언이다.
며칠 전 4식당에서 밥을 먹고 나오는 길에. 수요조사를 위해 식당 이용객의 출신 단대를 묻는 투표함이 있었다. 투표의 도구로 예쁜 구슬이 놓여져 있었다. 선택지는 사범대, 사회대, 기타 단대 였었나. 어쨌든 인문대가 사범대 못지 않은 이용 계층인데 기타 단대로 분류된 일에 분개한 후배가 이런건 팍팍 넣어줘야 된다면서 구슬을 한 움큼 쥐어 기타 단대에 넣기도 했다.
그와는 별도로 그 구슬은 일반적인 구(球)형 구슬이 아닌 특이하고 색도 예쁜 구슬이었기 때문에 다른 후배는 하나를 살짝 집어가려고 했다. 그래서 다른 후배는 "그걸 또 감아오냐" 면서 한 마디 했다.
반방에 돌아와 이야기하면서 알게된 사실이지만 그 상황에서 감는다는게 무슨 말인지 몰랐던 사람은 구슬을 감아온 그 후배 뿐이었다. 같이 밥먹은 4명 중에 우리 3명은 부산 경남출신이고 그 후배만 서울출신이었던 것이다.
어린 시절부터 써오던 그 말의 어감을 그 때부터 어렴풋이 느끼고 있었다. 대수롭든 대수롭지 않든 분명한 자신의 '절도 행각'을 변명하고 둘러대는 말이라는 것. 묘한 말이다. 그 말은 절도의 죄책감을 비교적 작게 느끼게끔 한다. 훔치다는 특수한 동사에서 그냥 밥을 먹는 것과 같은 일반동사 수준으로 어감을 변화시킨다. 어감의 측면에서 보자면 '타인 소유의 물건을 타인의 동의없이 비밀리에 자신의 소유로 이전시키는 행위'의 대표동사는 아무래도 '훔치다' 라고 생각된다. 그래서 '그' 말을 안쓴다는 일 자체가 자신의 비도덕적 행위를 이야기할 때 얼마나 사람을 편하고 제 3자화시키는지. 이런 묘한 말이 널리 쓰이게 된 사람들 사이의 분위기가 참 묘하다.
물론. 이렇게 길게 이야기 안해도 모두들 알고 있다. 뭘 그렇게 대놓고 이야기하냐 자신의 惡을. 그렇게 겸연쩍어하는 사람의 마음이다.
추신. 그냥 문득 생각이 나서 적어본건데 아마 이 글을 읽을 가능성이 있는 후배가 불쾌하거나 곤란하다면 즉시 비공개로 돌리거나 삭제해도 무관하니 주저없이 코멘트 부탁바람.
보론. 덧붙이자면 훔쳤다 라는 말에는 능동과 과거의 의미만 있지만 감겼다 는 말에는 수동과 과거의 의미가 있다. 없어진 물건이 분명 누군가 가져간 게 분명한 상황이면 '누가 훔쳐갔다'고 말하는게 보통일텐데, 내가 자란 환경에서 친구들은 그것보다 누가 쌔벼갔다..는 표현을 더 많이 썼었지ㅋ
# by | 2009/12/11 01:27 | 여러모로 잡설 | 트랙백 | 덧글(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