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다. 감아오다.

문자로 써놓으니 평소에 쓰던 어감이랑 사못 다르다. 어쨌든 저 동사는 훔치다와 거의 동일한 의미를 가진 부산 경남 지역의 방언이다.

며칠 전 4식당에서 밥을 먹고 나오는 길에. 수요조사를 위해 식당 이용객의 출신 단대를 묻는 투표함이 있었다. 투표의 도구로 예쁜 구슬이 놓여져 있었다. 선택지는 사범대, 사회대, 기타 단대 였었나. 어쨌든 인문대가 사범대 못지 않은 이용 계층인데 기타 단대로 분류된 일에 분개한 후배가 이런건 팍팍 넣어줘야 된다면서 구슬을 한 움큼 쥐어 기타 단대에 넣기도 했다.

그와는 별도로 그 구슬은 일반적인 구(球)형 구슬이 아닌 특이하고 색도 예쁜 구슬이었기 때문에 다른 후배는 하나를 살짝 집어가려고 했다. 그래서 다른 후배는 "그걸 또 감아오냐" 면서 한 마디 했다.

반방에 돌아와 이야기하면서 알게된 사실이지만 그 상황에서 감는다는게 무슨 말인지 몰랐던 사람은 구슬을 감아온 그 후배 뿐이었다. 같이 밥먹은 4명 중에 우리 3명은 부산 경남출신이고 그 후배만 서울출신이었던 것이다.

어린 시절부터 써오던 그 말의 어감을 그 때부터 어렴풋이 느끼고 있었다. 대수롭든 대수롭지 않든 분명한 자신의 '절도 행각'을 변명하고 둘러대는 말이라는 것. 묘한 말이다. 그 말은 절도의 죄책감을 비교적 작게 느끼게끔 한다. 훔치다는 특수한 동사에서 그냥 밥을 먹는 것과 같은 일반동사 수준으로 어감을 변화시킨다. 어감의 측면에서 보자면 '타인 소유의 물건을 타인의 동의없이 비밀리에 자신의 소유로 이전시키는 행위'의 대표동사는 아무래도 '훔치다' 라고 생각된다. 그래서 '그' 말을 안쓴다는 일 자체가 자신의 비도덕적 행위를 이야기할 때 얼마나 사람을 편하고 제 3자화시키는지. 이런 묘한 말이 널리 쓰이게 된 사람들 사이의 분위기가 참 묘하다.

물론. 이렇게 길게 이야기 안해도 모두들 알고 있다. 뭘 그렇게 대놓고 이야기하냐 자신의 惡을. 그렇게 겸연쩍어하는 사람의 마음이다.

추신. 그냥 문득 생각이 나서 적어본건데 아마 이 글을 읽을 가능성이 있는 후배가 불쾌하거나 곤란하다면 즉시 비공개로 돌리거나 삭제해도 무관하니 주저없이 코멘트 부탁바람.

보론. 덧붙이자면 훔쳤다 라는 말에는 능동과 과거의 의미만 있지만 감겼다 는 말에는 수동과 과거의 의미가 있다. 없어진 물건이 분명 누군가 가져간 게 분명한 상황이면 '누가 훔쳐갔다'고 말하는게 보통일텐데, 내가 자란 환경에서 친구들은 그것보다 누가 쌔벼갔다..는 표현을 더 많이 썼었지ㅋ

by 나인테인 | 2009/12/11 01:27 | 여러모로 잡설 | 트랙백 | 덧글(1)

율리시스

2005년과 2006년, 여유있던 시기에 나는 제임스 조이스의 '율리시스'를 읽으려고 생각날 때 마다 노력을 기울였다. 내 생각에 당연히 번역이 나와 있어야 할 대작이었던 율리시스는 이상하게도 중도에서도 큰 서점에서도 잘 찾아지지 않았다. 언젠지 이제는 기억이 잘 안나지만 중간에 원서를 구입하기도 했으나 읽기가 어려웠다. 그렇게 대학에 와서 2년의 시간동안 나는 율리시스를 읽는 일에 실패하고 있었다.

당연한 일이었다. 내가 찾는 그럴듯한 번역판은 2007년에 나왔기 때문이다. 국내에 세 번째 번역이라고 한다. 처음은 68년, 두번째는 88년 그리고 07년 거의 20년의 터울이다. 68년(왠지 68혁명이 생각난다) 번역판은 그렇다치고 88년은 왜 안보였을까. 여하튼 이 사실들을 2년 후 복학한 09년 겨울에야 알게 되었다. 07년 1학기에 만날 수도 있었겠지만 그 때는 군복무 이전 마지막 학기로 나름 파란만장한 시기여서 중도에서 제대로 책을 찾을 여유는 없었으므로.

처음 책장에서 율리시스를 발견했을 때 바로 '그 물건'임을 직감했다. 제임스 조이스 평전 율리시스 연구서 이런거 아니고 레알 내가 찾던 내가 읽을 수 있는 번역판. 내가 가진 행정법 책보다 더 크고 두꺼운 그 물건을 집어들어 몇 페이지 읽어 보니 왜 이렇게 늦게 나올 수밖에 없었는지 쉽게 이해할수 있었다. 가격은 3만8천원이 책정되어 있으나 10만원을 받아도 그 노고에 부합할지. 수지타산으로는 힘든 일이다.

이렇게 기말고사 시험공부를 하던 도중에 문득 발견하였으니 아쉽게도 당장 읽을 수는 없다. 일단은 종강할 때 까지 기다리도록 하자..

by 나인테인 | 2009/11/28 20:08 | 소소한 취미, 일상 | 트랙백 | 덧글(0)

당신의 눈길은 타인의 돌아서는 뒷모습에 머무른 적이 있나요?

집에 돌아오는 길에, 어떤 아주머니가 차를 타고 출발하는 사람을 배웅하시는걸 보았다. 배웅 나왔다가 집으로 다시 들어가려고 발길을 돌리면서도 잠깐. 다시 고개를 돌려 멀어져가는 차를 바라보고 다시 집으로 발걸음을 옮기시는 모습을 보았다.

자신의 집에서 다른 사람을 배웅하는 일과 밖에서 만나고 다시 서로 헤어지는 손길을 흔드는 일은 다른듯 해도 같은 일이다. 우리는 만나고 또 헤어진다. 만날 때는 같은 점에서 만날 것이기 때문에 서로를 바라보지만 헤어질 때는 각자 다른 점을 향해 가기 때문에 서로를 바라볼 수 없다. 바라 볼 일이 없다. 그렇기 때문에 돌아가는 뒷모습을 바라본다는 일이 특별한 것이다.

요즘 같은 흉흉한 세상에 안전이 걱정되어 발길을 돌리는 잠깐 사이에 무슨 일이 일어났으까 걱정되는 마음일까. 그렇긴 해도 내 눈길이 신의 눈길이 아닌 이상에야 그 사람의 점에 도착할 때까지 바라볼 수는 없는 일이다. 그리고 미래에 기술이 발달하여 그게 가능해질지라도 그 잠깐의 뒤돌아서서 바라봄은 사라지지 않을 것 같다. 아마 내 생각으로는 아주 오랜 과거부터 이어져왔을 인간의 습관일 테니까. 안전보다는 좀 더 그 사람의 존재에 대한 관심이 그 행동의 원인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그 눈길의 끝은 무엇을 바라보고 있을까. 아주 거창하고 심오한 뜻이 담겨 있을까 아니면 별다른 뜻을 두지 않는 사소한 습관일까. 멀어져가는 그 사람의 뒷모습은 나에게 아무런 말도 하지 않는다. 그래도 그 뒷모습을 응시하는 순간의 행동은 그 사람이 속한 풍경을 좀 더 따뜻하게 해준다. 이따금씩 사람이 그리울 때 회상하곤 하는 그런 따뜻함.

by 나인테인 | 2009/11/21 20:27 | 내가 쓰고 싶은 것 | 트랙백 | 덧글(0)

인상, 이미지

중국어입문 시간에 문답. 선생님이 칠판에 중국어로 차, 코카콜라, 쥬스, 생수 등의 단어와 발음을 쓰시고 어떤 마실 것을 좋아합니까? 라고 한 사람씩 물어보았다. 내 차례에 나는 과일쥬스라고 대답하고 싶었는데 칠판에 써진 그 단어의 발음들이 선생님의 몸에 가리는 바람에 눈에 보이는 '차' cha 를 가지고 대답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대답하자 선생님은 정말로 좋아해서 그렇게 대답하는건지 다들 조사해봐야겠다고 웃으시면서 나를 의심하시는 듯 했다. 찻잔에 녹차를 끓여 놓고 마시면서 공부할 것 같은 이미지가 아니라고 말씀하시면서 말이다.

차를 마시면서 공부하는 건 고상할 것도 대단할 것도 없는 행동이라고 생각한다. 공부할 때 커피를 마시든 콜라를 마시든 양배추를 씹어먹든 뭐든지 간에 차를 마시는 행동과 전혀 다를 바 없다. 선생님의 의심 어린 눈빛에 멋쩍게 웃음으로 넘기고 말았으나 우연히도 나는 녹차를 마시면서 공부하는 사람이었다.

별로 수업시간에 선생님과 대화한 적도 없어서 성격을 드러낸 일도 없을테고. 스포츠를 즐기는 운동파의 인상을 준 것도 아닐텐데 왜 나는 녹차 부적격자의 이미지를 가지게 되었을까. 가죽자켓만 줄창 입어서 그런걸까? 그냥 단정하게 입은건데.. 선생님 나름의 판별기준이 있을테지. 여하튼 나는 어떤 이미지로 구성된 사람일까를 새삼 생각해보게 하는 일이었다.

by 나인테인 | 2009/10/27 20:54 | 소소한 취미, 일상 | 트랙백 | 덧글(4)

밤이라는 시간.

밤은 힘든 시간이다.

노점상이나 혹은 대형마트의 정문 밖 가판대에서 늦은 시간까지 물건을 파는 사람들. 더구나 이미 겨울 처럼 느껴지는 가을의 밤은 차갑다. 나름 준비를 하더라도 오랜 시간 서서 자신을 돌아볼 틈도 없이 지나가는 사람들을 살피며 물건을 파는 일은 쉽지 않다.

연민을 느낄 필요는 없을지도 모른다.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계약서에 쓰인대로 이행하고 월급을 받기 위해 서 있는 사람들이다. 자신을 위해 그 자리에 있는 사람들이다. 그러나 한편으로 부모님의 도움으로 대학생이라는 안락한 위치에 있는 나는 스스로가 비교되는 것이다. 그 사람과 나의 차이는 무엇일까.

전통차나 약재를 파는 가판대에 서 있는 분은 컨셉을 맞추어 개량한복을 입고 있다. 그 사람을 보는 여러 각도의 시각이 있다. 이 날씨에 단촐한 개량한복은 좀 추워보이기도 하고. 파는 상품에 맞춘 컨셉은 더 많은 판매량을 올리기 위한 대기업의 상술일까. 그 사람은 구매자에게 이것 저것 설명을 하고 있는데 얼마나 전문가일까? 그 사람은 어디에 집이 있어서 어떻게 출퇴근을 할까? 30대 전후로 보이는 남자가 돌아갈 집에는 그 사람의 소중한 사람이 누가누가 있을까.

밤이라는 시간에 많은 사람들이 서로를 지나치며 만나고 흩어져 간다.

by 나인테인 | 2009/10/10 22:36 | 내가 쓰고 싶은 것 | 트랙백 | 덧글(6)

오랜만에 맥주를 시원하게 마셨다.

최근 한동안은 술자리에서 어떤 맥주를 마셔도 별로 시원하게 벌컥벌컥 마신 적이 없었다. 그런데 오늘 장터에서 마신 맥주는 아주 시원했다. 1차적으로는 물건도 좀 나르고 하면서 목마른 상태에서 마셨기 때문이겠지. 하지만 그것보다는 좀 더 몸도 마음도 단순하게 움직이고 다른 생각이 없어서이지 않았을까. 그동안의 나는 좀 쳐져 있었기 때문이었을까.

바람의 검심에 나왔던 그 말 그대로이다. 나의 경우에는 평범한 맥주이지만ㅎ

by 나인테인 | 2009/09/25 00:06 | 여러모로 잡설 | 트랙백 | 덧글(0)

꿈을 꾸었다.

아마도 고등학생 시절. 나는 남고를 나왔는데 설정은 남녀공학. 학교생활하는 내용이었는데 점심시간에 다 같이 학교 안에 있는 문방구에 갔다. 같은 반 애들이 떼로 몰려가서 각자 필요한 필기구들을 샀다. 나는 친구들이랑 이런저런 이야기하면서 별로 구입할 건 없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다들 계산을 하는 모습을 하는걸 보니 각도기와 컴퍼스를 하나씩 가지고 있었다. '아차 6교시가 수학이었지' (고등수학에서는 저 기구를 쓸 일이 없는데=_=) 나도 부랴부랴 구입하려고 하는데 시계를 보니 12시 59분. 다음 쉬는 시간에 와서 사야겠다 라고 생각하며 잠이 깼다.

내 나름의 분석으로는 이렇다. 준비물을 산다는 설정은 요즘 수업에 들어오는 학생들의 준비성에 놀라서였던것 같다. 예를 들어 선생님이 IMF의 전망치에 대한 보고서로 설명을 하고 있었다. 그냥 설명만 할 용도라서 굳이 게시판에 올리지 않으셨는데 다음 시간에 보니 그걸 찾아서 프린트 해온 학생들이 있었다ㅋ

그리고 고등학생인건 좀 직접적이진 않지만 다시 학생 신분으로 돌아온 걸 반영한 것일까. 위에서는 이야기하지 않았는데 생각해보니 반 친구들의 얼굴중 몇명은 역동반 사람들이었던 것이다=_=.. 거기다 다수가 후배들이었는데 같은 나이로 나오다니ㅋ 요즘 애들은 잘 모르겠지만 꿈에 역동반 사람이 나온다는건 나름의 규칙성이 있는건데..

저런 점 이외에 가장 강하게 느낌이 남았던 부분은 꿈의 마지막 부분이었다. 남들 다 할때 모르고 어리버리 하다가 마지막에 허둥지둥 하는게 참 '나답다'고 생각되었기 때문에.

by 나인테인 | 2009/09/12 11:02 | 여러모로 잡설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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